I Know This
Give me one good reason, I loved you endlessly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이 왔다.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다던 마음가짐이 어디 갔지?
다음 주는 제주도 북 페어.
나 다 잘 할 수 있겠지.
머리와 마음이 온갖 생각들로 가득하면,
잘만 되던 탁구도,
자꾸 손목으로 공을 쳐내기 급급하다.
아침에 엄마가 신문 칼럼을 하나 보여줬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교수님의 글이라,
주옥같은 표현들과 명쾌한 문장들에 속이 다 시원했다.
나는 글의 도입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첫 시작이 중요하듯이)
그런 의미에서 타고난 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똑똑한 사람의 글과 생각은
너무 매력적이다.
관계를 시작하고 싶은가? 선물을 하라.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가? 또 선물을 하라.
관계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싶은가? 부적절한 선물을 하라.
관계를 끝내고 싶은가? 이별 선물을 하라.
선물은 그야말로 관계의 시작과 끝이다.
관계를 시작하고 싶은데, 왜 선물을 해야 하냐고?
그럼 폭력을 행사하겠나?
한 대 때리고서 말하는 거다.
“잘 지내보자는 뜻에서 한 대 때려봤어.”
미친놈이 아닐까.
그러나 세상에는 괴롭히는 것으로 상대의 관심을 얻으려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이 원하는 관계는 왜곡된 관계이다.
멀쩡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소 한번, 물 한 잔이라도 좋으니 선물을 주면서 접근한다.
괴롭힘이나 폭력은 대개 그 자체로 나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다.
상대의 고통에 충분히 공감했다면, 때리지 않았을 것이다.
폭력은 상대를 제거하고자 할 때 쓰는 방법이지, 관계를 시작할 때 쓰는 방법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이기만 하면, 관계의 핵심인 상호성이 생겨나지 않는다.
자기가 삼겹살을 좋아한다고, 채식주의자에게 삼겹살을 선물하지 말라.
자기가 고양이를 귀여워한다고, 쥐에게 고양이를 선물하지 마라.
그 선물에는 상대를 위하겠다는 마음, 상대의 입장에 서보겠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래서는 관계가 시작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선물은 자신의 협소한 우주를 한 발자국이라도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모름지기 선물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좋아할 만한 것을 주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좋아하면 제일 좋겠지만.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중
각자의 우주 속에만 갇혀 살아오던 우리는
때로는 부딪히고 깨지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맞춰가는 방법을 배워왔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여러 관계 속에서 이어지고 연결되고 또 끊어지기도 하는 경험은
그래서 너무나도 중요하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내려놓는 법도 알아야 했다.
그렇게 우리만의 편한 comfort zone을 벗어나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불편하지만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할 수 있는 것.
처음이지만 상대에게 맞추고 싶은 것, 등등.
배려는 사실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저 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언제 행복할까?
어떤 감정을 느낄까?
자연스레 이런 모든 고민들이 배려가 되고,
그 배려가 담긴 행동들이 결국 사랑의 언어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가 통할 때 관계의 핵심인 상호성이 생긴다.
자기중심적이기만 하면, 관계의 핵심인 상호성이 생겨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선물은 자신의 협소한 우주를 한 발자국이라도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저는 싸우지 않고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로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려 합니다.
저의 건강함을 싸우는 데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랑하며 삽니다. 사랑하며 삽시다.
결국 모든 것의 답은 사랑이었다.
단지 너무 너무 어려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