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In My
I got jazz in my ride all the time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 너무 가혹해
차라리 소리 뿐이라면 신경 안 쓰겠는데
언어는 뜻을 전달하고 그건 너무 가혹해
게다가 좋던 말던 강제성이 나와 함께해
누군가 말 걸 때에 세상 깨끗한 눈으로
먼 산을 보고 싶어
세상에 언어가 없다면 마치 우주 같을 거야
아마 훨씬 행복할지도
발전과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막는건
언어야 어제 옆집 꼬맹이가 혼나더라고
꿈을 가져도 막는게 언어야 너무 가혹해
네가 뭔 재능이 있어서 그런 꿈을 꾸냐며
하는 사람들은 누굴 깎아 내리기 까지
너넨 한게 뭐냐고
세상에 언어는 있어도 그게 무기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고 생각해 난
늘 벗어날 수 있을 땐 벗어나려 해서인지
항상 듣는 음악도 언어가 필요없는
언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난 아주 좋아
‘너 지금 미국이야 한국이야?
너 음악, 춤, 옷 다 좋아하니까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는
피디 동기 언니의 연락을 받았었다.
제안한 프로젝트의 스케일이나 시간상
너무 부담이 되어 고민하다가, 절대 혼자는 못한다고 했다.
그럼 너가 팀 꾸려서 해보라는 말에,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명민언니가 떠올랐다.
그렇게 졸업 이후로 못 보던 명민언니와
3,4월 내내 “이거 한국적이야?” 되물으며 밤샜던 추억.
당시 조선구마사 사태로 하나하나 더 신경 쓰다가
고등학교 때도 안 흘린 코피가 쏟아진 기억.
동시에 리샤모 오프라인 이벤트 기획과 진행 등,
정말 바빴던 봄이었다.
촬영 직전까지도 계속 고민하고 입어보던 착장들.
나전칠기와 나이키의 만남, 조각보 넥타이 없어서 만들기,
미국에서 옷 받기, 비싼 옥반지 등등.. 추억이 너무 많은 프로젝트.
신입 시절, 조연출 막내로 매일 밤새던 은경언니와
당시 뮤비 촬영 현장이나 녹음실에서 밤새던 음악 제작팀 막내였던 나.
그리고 7년이 지난 2021년,
언젠가 한국 문화와 의상을 힙하게 풀어보고 싶다던 내 말을 기억하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순간,
너무 든든한 사람들과 혼자서는 못했을 일들을 즐겁게 해냈다.
새벽까지 이어진 촬영에도,
즐거운 분위기 덕에 좋은 추억이 된 우리의 봄.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의 좋은 에너지.
‘나는 이종화 센스 믿지.
통과가 뭐야 저기 이미 센스 천상계에서 줌바 추고 있지.’
이 말이 그렇게나 든든했다
봄.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가을.
드디어 전통주 회차에 아트 디렉팅을 맡은 프로그램이 오픈됐다.
외국 스타트업 대상으로 진행한
7주의 리샤모 커뮤니티와 커리큘럼도 잘 마무리했다.
그렇게 하나의 챕터를 끝내는 기분.
한 챕터가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새로운 챕터는 열리고 있지만.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며.
씩씩하게 계속 나아가리라
다짐하는 오늘.